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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보고
    잡설 2020. 11. 1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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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 칼부림 사건이 TV에서 나오는데 외장 하드에 옛날 싸움꾼 얘기라 있어 찾아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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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락교회 이성순 장로님.............
    이렇게 소개하면 그게 누구냐고 반문할 분들이 많을 것 같아 그의 닉네임을 불러본다.

    시라소니.........

    싸움에 관한 한 역대 최고의 파이터로 자타가 인정하는 동양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필자가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초딩 3년 때 친구 한놈이 울나라에서 누가 젤 쌈을 잘하느냐고 물어봐서 어리버리하게 딴전 피우자 그 친구 입에서 나온 한마디....


    "시라소니야! 임마..."

    그렇게 그를 알게 된 후 필자는 여러 자료 및 서적을 통해 그에게 접근을 시도했고 이렇게 작은 자리를 마련해 그의 이야기를 쓸까 한다.

    그는 이북사람이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1914년이라는 자료도 있고 17년이라는 자료도 있는데 지금까지 생존해 계셨더라면 80 후반은 족히 되셨을 걸로 추정된다. 그의 형들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도 있었고 전 일본 빙상대회에서 챔프를 먹었던 형도 있었다. 그런 형들에 비해 시라소니는 체구도 작을뿐더러 특출한 재주도 없었다. 

    그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넙적한 얼굴에 흉터로 도배질된 이마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반쯤 감긴 졸린 눈 (고행석의 불청객 아시죠? 구영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까지 외모 또한 아니올시다 다. 그런 그가 아버지 눈에는 탐탁치 않게 보였던 게 당연하고 그런 시라소니는 겉돌게 된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그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체구가 작은 사람이 덩치 큰 대, 여섯 명을 박치기로 때려눕히는 걸 목격하게 된다. 그 후 집 뒷마당에 모래주머니를 묶어놓고 박치기 수련에 들어간다. 그의 말년 시절 누가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장로님..... 박치기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음....기거이 당연히 뇌가 흔들리디 않아야 되디......."
    "자기가 먼더 박아놓구 자빠지면 우습지 않갔네...."

    그렇게 박치기를 연마한 후, 그는 십 대 시절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도 싸움을 거르지 않고 밥 먹다시피 아니 그 이상 싸움을 해댔다고 한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어본다고.... 싸움도 해본 사람만 이 할 수 있는 것이니....

    또한 그를 싸움의 천재로 만든 스승이 있었으니 도비노리라 해서 밀수품을 봇짐에 메고 세관의 눈을 피해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하는 기술인데 이것이야말로 시라소니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박치기와 함께 그의 전매특허가 된 무릎치기 역시 도비노리에서 터득된 기술 중 하나이다.

    상상을 해보라! 달리는 기차에 속도를 맞추어 달려가며 몸을 낮춘 후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그 속도를 이용 몸을 튕기며 귀신처럼 올라타는 모습을..........

    이렇게 싸움실력을 키워가던 시리소니는...... 잠깐 여기서 그의 닉네임에 대해 알아보자. 시라소니는 삵쾡이과의 동물로써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며 빠르기 또한 비호 같은 잡식성 동물이다. 그 당시 시라소니가 밀수품을 흘리고라도 오는 날이면 그의 매형은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

    "에라! 시라소니 같은 놈 같으니...." 

    번역하자면 칠칠치 못한 놈 정도로 쓰면 무리가 없겠다.

    그 후 그의 아호처럼 시라소니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시라소니라는 닉네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어디서나 자기를 소개할 때가 되면 본명 대신 시라소니라고 내뱉었다고 한다.

    신의주에서 싸움으로 성가를 드높이던 그에게 신의주는 너무 좁았다. 그는 평양으로 원정 가 당시 최고의 이북 주먹이라는 평가를 받던 박두성을 단번에 때려눕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라소니는 이북 최고의 주먹으로 인정 받음과 동시에 그의 주먹 인생의 전성기의 불꽃을 점화시킨다.

    그 후 그는 중원으로 날아간다. 중국에서 그의 활약은 말 그대로 독야청정 이름 있는 거물 주먹만 골라 때려잡았고 맞짱 승부(1:1 대결)에서 시라소니를 잡으려면 총이 아니면 못 잡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얼마나 그가 대단했냐면 그의 닉네임을 흉내 낸 가짜 시라소니들이 그의 닉네임을 팔며 설쳐댔다고 할 정도이니 할 말 다한 것 아닌가........

    실제로 중국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그는 스무 명이 넘는 중국&일본 깡패들과의 대결에서도 물러섬이 없이 다 때려눕혀 그의 주먹 인생에 꽃을 피우게 된다. 칼을 들었건 덩치가 거인이건 그의 박치기에 걸리면 열이면 열 다 골로 갔으며 그가 맞짱 승부를 펼칠 때 한눈을 팔았다가는 싸움구경을 못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의 강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시라소니를 평가할 때 그의 동물적인 감각을 첫 손에 꼽는다. 예를 들어 선반에 놓인 물건이 떨어진다고 치면 그는 보통 사람보다 먼저 그 일을 눈치챈다는 것이다. 고로 싸움이 벌어질 때도 임기응변이라는 측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의 최고 무기 박치기에 대해 알아보자. 보통 박치기가 아닌 [공중걸이 박치기]라 명명된 그의 박치기는 거리를 두고 몸을 날려 상대방의 이마를 박살 내는 데 목표물이 빗나갈 경우 걸릴 때까지 머리를 뒤로 젖혀 기어이 박살 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본 이들은 흡사 총에 맞은 이가 나가떨어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의 박치기는 김두한의 피스톤 펀치, 홍영철의 발차기와 함께 당대 최고가는 기술로 손꼽혔다.

    그가 싸울 때 몸을 옆으로 돌려 상대방을 특유의 졸린 눈으로 응시하다 비호같이 몸을 날려 박치기와 무릎 치기로 상대방을 넘기는 일은 그의 싸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싸움을 즐겼다. 하나의 스포츠로 생각 자신의 단점들을 고쳐나갔으며 심지어 몸이 아플 때는 실력을 발휘 못해 패할 것을 두려워해 몸이 나을 때까지 몸을 숨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양복 입는 것과 자신의 싸움에 누가 끼어드는 것을 특히나 싫어했으며 싸움 얘기가 나올 때면 만사 제쳐두고 그 얘기에 몰입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싸움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가 중원을 제패한 후 일이 꼬여 일본 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그의 유일한 감옥생활이다. 그 흔한 전과 하나 없었으며 조직 또한 가져본 적이 없다. 늘 혼자 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그때마다 기상천외의 기술로 상대방을 무너뜨렸다.

    시라소니는 고향에 있다가 월남하게 된다. 월남 전 그는 일이 꼬여 손가락을 자르게 된다. 여자와 잠을 자는데 들이닥친 그의 정부가 휘두른 칼은 시라소니의 심장을 노렸으나 그는 귀신같이 낌새를 채고 몸을 돌려 칼을 잡으려까지 했다. 그러나 그때 칼이 왼쪽 새끼손가락을 스치며 덜렁 거릴 정도로 깊은 상처를 주었다.

    의사는 한 달 정도 있으면 낫는다고 충고했으나 성질 급한 시라소니는 자르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이에 의사 왈........

    "자르면 회복은 좀 빠르죠....."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라소니는 오른손으로 덜렁거리던 새끼손가락을 잡아 찢었다. 그로 인해 시라소니는 그 후 항상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서울에 있던 주먹들은 그를 스카웃하러 안달이 났지만 그를 스카웃한건 평안도 사내 정팔이 었다. 그는 직접 친서를 보내 고향에서 편히 쉬던 시라소니를 월남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보낸 내용은 간단하다.

    "형님 고향사람들이 싸우고 난리가 아닙네다. 형님이 오셔서 정리 좀 해주시라우요."
    "기래.... 기럼 내가 가야디...." 

    이렇게 순진한 게 바로 시라소니다. 이익이고 이득이고 고향사람들 얘기라면 발 벗고 나서는 그이기에 정팔의 이 계략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진다.

    참고로 정팔의 소속은 이화룡과 함께 명동파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종로파와 동대문파가 이남 출신인데 반해 명동 파는 십중팔구 이북 사내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평안남도를 총괄한 대동강 동지회의 이화룡 평안북도를 총괄하는 압록강 동지회의 정팔.......

    물론 시라소니는 평안북도 출신으로 정팔은 그 점까지 계산 그의 수중(?)에 시라소니를 넣게 된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누구인가? 누구에게도 간섭받는 걸 허용 안 하며 조선 팔도가 내 땅이라는 개념을 가진 이. 싸움의 천재에게 그런 계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월남하자 서울에 모여있던 이름깨나 날리던 주먹들이 긴장하게 된다. 이미 주먹계의 전설로 자리 잡은 그는 신화이자 주먹계 최고의 실력파로 자타가 공인하던 차였다. 그는 맨발 대장(김성순)에게 맞상대를 걸어 그를 때려눕히며 화려한 신고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유명한 김두한과의 우미관에서의 일화로 인해 김두한에게 형님 소리까지 들으며 최강의 자리를 굳혀나갔다. 명동 보스 이화룡조차 그에게 절절맸으며 동대문 황제 이정재에게도 형님 소리를 듣는 자가 바로 시라소니였다.

    여기서 우미관 일화를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 

    사건은 대충 이렇다. 시라소니의 절친한 친구 이영환과 함께 들른 술집이 하필이면 김두한의 안방 중의 아랫목 자리인 우미관이었으니.............

    이영환은 난처해하며 둘을 소개시키기에 이르렀다.

    "어... 이쪽은 김두한이라고 성순이 니두 알디?"
    "기럼....내레 말은 많이 들었쑤다."
    "기리고 이쪽은 이성순이라구......."
    "예? 이성순씨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예... 하여간 반갑습니다."
    "텀 듣긴 이 틴구가 시라소니야!"

    이 순간 김두한의 안색이 변하며 폭언이 쏟아진다.



    "그래 개새끼 잘 걸렸다. 네가 죽을려구 환장을 했구나. 지발로 호랭이굴로 왔다 이거지."



    씩씩거리며 열통을 내는 그를 시라소니는 뚫어지게 쳐다보다 한마디 내던진다.



    "어~ 기래 인사치구는 화끈해서 좋구만 기래두 첨보는 사람에게 너무하지 않네. 내두 님자랑 함 붙어보구 싶었쑤다. 그래 함 붙어보자우...."



    바로 웃통을 벗는 시라소니..........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김두한의 안방에서 쫄기는 커녕 당당히 맞짱 승부를 먼저 걸어오는 그를 보며 이미 목숨 따윈 두렵지 않다는 그를 보며 모두 긴장해 있을 즈음에.....



    김두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농담한 겁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동생으로 받아주십시오."



    주먹세계에서는 한번 형님이면 영원한 형님이다. 물론 싸움이 벌어졌으면 어땠었을까 그 후 말들이 많았지만 결코 시라소니에게 유리한 싸움판은 아니었다. 홈 어드벤테이지도 없는 막힌 공간에서 그것도 수십 명의 김두한 패거리에 휩싸인 상태에서 실력 발휘를 바라는 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하여간 이 사건은 시라소니를 현재까지 최고의 주먹으로 만든 결정타임에는 분명하다. 김두한도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신다는 사람.......

    그가 바로 시라소니였다. 명동 파도 넘나들고 동대문 파도 넘나들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사내 시라소니.................

    하지만 시라소니가 너무 자기 실력을 과신하며 독불장군의 이미지를 풍기며 그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던 동대문 황제 이정재를 얕보게 됐으니 이로 인해 시라소니의 주먹 인생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고향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정재에게 동대문 점포를 내놓으라며 회의 도중에도 불쑥 그의 자리에 뭉게 앉는 시라소니를 동대문 참모들이 곱게 볼리 없었다.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고 사람이 좋게 대하는 것도 한두 번......... 하루는 사람을 보내 돈을 보내라고 종이에 휘갈겨 심부름을 시킨 적도 있었으니...........

    참고 있던 이정재가 드디어 울분을 토하게 된다.



    "이참에 박살 내자.........."



    이정재는 자기를 업신여기는 시라소니를 박살내기 위해 치사하지만 무기와 그의 최정예 참모들을 동원 시라소니 사냥에 나선다. 그때가 53년 8월............

    아주 더운 여름날 시라소니는 이정재 사무실을 찾게 되고 십여 명의 참모 등과 맞짱 승부를 벌이게 된다. 주먹계 최고의 사건으로 이름이 나있는 이 사건은 시라소니가 40대에 벌인 유일한 승부이자 그의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며 그가 주먹계에 남아있으며 마지막으로 남긴 승부임과 동시에 많은 주먹들도 이 승부를 한국 주먹 역사 최고의 빅게임으로 거론하곤 한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시라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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