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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戊子年)을 보내며아버지 2020. 10. 23. 10:22728x90반응형
어쩌다 보니 또 한해의 세모를 맞게 되었다.
아직 구정까지는한 달이 조금 못되게 남아 있지만 돌아오는 새해는 육갑 간지로 기축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지내본 일이 없는 간지의 연도를 보냈지만, 앞으로는 한번 살았던 간지의 연도를 다시 살아가게 됐다.
그러고 보니 국민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의 한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선생님에게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우스갯소리로 하느님이 동물들을 만들어놓고 수명을 주는데 3년 , 5년 , 10년 이렇게 정할 때, 사람이 너무 많이 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하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그러면 너는 60년 해서 사람은 60년이 수한이라고 하며 60이 넘은 어른들이 들으시면 화낼지 모르지만 60년을 더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 시절에 그 나이는 나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숫자처럼 들렸고, 킥킥 거렸던 때가 어제인 듯한데, 나에게 어느덧 그 나이가 다가왔다.
세상 사람들이 너도 나도 흔히들 인용하는 말이지만,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으로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有十五而志于學)
서른에 자립했고(三十而立)
사십에 미혹되지 않았으며(四十而不惑)
오십에 천명을 알게됬고(五十而知天命)
육십에 남의 말을 순순히 듣게 됬고(六十而耳順)
일흔에 마음 내키는대로 좇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게 됐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고 했다.
감히 선현의 인생관에 나를 비견할 수는 없지만, 이 말대로라면 나도 이순을 지났다.
이순이란 뜻은 학자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이와 관련 재미있게 들은 것 중에 KBS에서 있었던 도올 강의에서 초대 손님으로 오셨던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씀 중에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거스르는 말을 들어도 그것으로 노여워 성내고 하는 일이 없어져야 할 나이가 됐다는 뜻이 담겨있는 줄 안다는 취지로 말씀했다.
학문적 해석이라기 보다는 도올 들으라고 한 말씀이었던 것으로 안다.
어쨌든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말을 생각한다.
평소 성질이 급하고, 내놓을 것 없는 자존심에 시비 분별의 망상에 빠져 남에게 노까운 말 들으면 역정 내기 좋아했던 성질로 보아, 보약 같은 말씀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세상의 시시비비를 따지고 자존심 생각해봐야 별 볼일 없어질 나이가 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지난 때에 썼던 한시 중에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변하지 않았다(昨日太陽今不變)는 구절을 쓴 일이 있었다.
2001년 원단에 인간이 만들은 시간 개념을 나누기 위해 정해진 형식에 지나친 의미를 두고 법석 떠는 것이 싫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올해의 세모는 어쩔 수 없는 속근(俗根)으로 지난 때와 다른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그렇게 빨리 간 세월이었건만 이놈의 시간이 왜 이리 가지 않나 하고 시간만 빨리 가기를 바라며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았다.
사람이 처한 현실이 답답하고 고생스러우면 시간이 간다 해도 뾰족한 수가 없건만 그래도 어서 시간이나 가라고 바라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나에겐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보낸 부끄러운 시간들이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보려 발버둥 치며 살아온 날 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능한 탓으로 세상일 마음대로 되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솔직히 다시 태어나지 않을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절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다.
복닥거리며 살은 세월에 변변한 노후대책이 없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노후대책이 마련되지 못한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평생을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분들은 퇴직금으로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했던 말년의 여유를 보낸다지만 꿈같은 얘기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왕이니 돈 많은 사람에겐 걱정이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삶이란 것이 얼마나 한심 한가를 절감한다.
옛날에는 자식이 있으면 가난해도 노후의 문제는 걱정이 없었다.
자식이 20만 넘으면 당연히 부모를 봉양하는 게 상식이다 보니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도 노인은 예우의 대상이었다.
오늘은 자식이 30이 넘어도 부모에게 손 벌리는게 보통의 현상이고, 나이가 들어도 부모는 귀찮은 존재일 뿐으로 변했다.
사회 또한 자기가 행세하지 못하는 노인은 천한 신분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는 참 서러운 세월을 살다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식민치하에서 해방되어 갓 건국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에 태어나 어린 시절 전쟁을 겪으며 또 그 후유증으로 가난과 배고픔의 싸움이었고, 배우지도 못하고 맨주먹으로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겪으며 사는 중에도, 부모에 대한 책무,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갖가지 책무를 수행했고, 또 자기가 못 배운 한을 자식에겐 풀어 보고픈 욕심으로 가르치려 교육열을 불태운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살다 세월은 갔고 이제는 자식을 걱정하며 살지만 막상 자기의 노후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식 덕 볼 처지도 아니다.
오히려 도와줘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한심한가.
지금의 60대 후반 70대 여자들은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 시집살이, 시집가선 시어머니 시집살이, 늙어서는 며느리 시집살이라더니 모두가 쌤쌤인 것 같다.
그저 하늘 향해 헛웃음 한번 쳐볼 뿐이다.출처 Pixabay: stokpic 반응형'아버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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