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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회설_2
    아버지 2020. 10. 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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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윤회를 일으키는 것은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이것은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종자로서 그 근본은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우주보다 나중까지 간다고 한다.

     

    그 아뢰야식은 그 성품이 멸하지 않고 전생(轉生)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현대 심리학의 심소(心巢)라고 한다면 그 아뢰야식은 세상을 살며 충동을 유발하고 다시 인연 또는 비 인연에 의한 훈습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피 훈습과 차 훈습으로 나타나는데 피 훈습은 본인의 처음 의사와 관계없이 남으로부터 배워서 형성되는 것이며 차 훈습은 여러 가지 주위 사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훈습이라고 한다.

     

    이것이 충동과 훈습에 의하여 또 다른 성질의 복잡한 아뢰야식으로 변질이 되는데 여기까지는 근대 심리학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나 근대 심리학이 심소의 생성이나 훈습되기 이전의 같은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쌍둥이가 전혀 다른 충동을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데 미흡하다면 아뢰야식을 설명한 불교의 윤회설은 그 문제를 쉽게 답할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뢰야식을 제 8식이라 한다.

     

    이것을 제 8식이라 함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백법(百法)에서 오온(五蘊)을 설명하면서 오온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을 말하는데 다시 설명하면 색온(色蘊)은 색체를 구별하는 등의 현색(顯色)과 대소(大小) 장단(長短) 등을 말하는 형색(形色) 등으로 심(心)의 의식이 없을 때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한다.

     

    수온(受蘊)은 우리들의 오관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며 상온(想蘊)은 표상,관념,추상,개념

    등으로 이것들은 상(想)의 작용이라 한다.

     

    그리고 행온(行蘊)은 의지라 말할 수 있으며 식온(識蘊)은

    지(智)의 작용을 뜻하는 말로 색(色)은 감각이며 수(受)는

    정념이고 상(想)이 욕념이라면 행(行)은

    관념 식(識)은 인식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5근(五根)에 의근(意根)을 더해 6근(六根)이 되고 여기에 연관 지어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의 5경(五境)에다 법경(法境)을 더해서 6경(六境)이 된다.

     

    다시 6근(六根)에다 6경(六境)을

    합해서 12처(十二處)가 된다.

     

    여기에서 복잡한 학문적 체계 해설을 다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위의 6근(六根)에 식(識)을

    붙여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을 전 5식(五識)이라 하고 의식(識)은

    제 6식(識)이라 한다.

     

    여기에 사유식(思惟識)인 말나식(末那識)을 제 7식(七識)이라 하고 그래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제 8식(八識)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말하기를 자성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윤회하는 것도 아니며 성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정무구한 것으로 너와 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고 오감의 작용은 물론 생사도 없는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미망의 망상이 일어나 각가지 분별이 생긴 것이기에 이것은 원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으로 바닷물에 이는 파도와 같은 것이고 환자의 눈에 보이는 환화(幻化)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망을 일으키지 않으면 먼지 낀 때를 벗긴 벗긴 거울과 같아 근본 광명을 보는데 그렇게 되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경지에서 보면 거울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벗길 때도 없다고 한다.

     

    그것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깨달음 그것도 오직 증오(證悟)로서만이 가능하다고 불교는 가르치고 있다.

     

    그 깨달음이란 "추중망상(麤重妄想)인 제 6의식의 멸진은 물론 미세망상(微細妄想)인 제 8 이야(梨耶)를 이탈하고 십지등각(十地等覺)의 대사심갱(大死深坑)에서 활연대활(豁然大活)하여 이야(梨耶)의 무기까지 영멸 한 상태"라고 성철스님은 선문정로에서 밝힌다.

     

    성철스님은 또 백일법문에서 "부처님은 중생에게 깨달음의 길을 알려주려 오신 것이 아니며 원래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러 오신 분이라" 고도 설법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원래 깨달은 경지가 진면목인데 미망으로 다시 생사윤회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원각경(圓覺經)에는 이런 말도 있다.

     

    금강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쭌 말 중에 "중생이 본래 부처의 성품이 있는 것이면 어째서 다시 무명이 있으며 무명을 모든 중생이 가졌다면 어째서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를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까? 시방중생이 본래 부처를 이루었다가 뒤에 무명이 일어났다 하니 그러면 여래도 언젠가는 다시 번뇌가 생겨난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니

     

    부처님 답변이 " 모든 세계의 시종(始終)과 생멸(生滅), 전후(前後)의 유무(有無), 집산(集散) 모두가 생각 생각에 계속되며 돌고 돌아, 오고 감이니 갖가지 취사(取捨)가 모두 윤회다.

    윤회를 벗어나지 않고 원각을 알려는 것은 원각의 성품까지 윤회케 하는 것이다.

    눈을 깜빡이면 물이 흔들리는 것처럼 구름이 흐르면 달도 움직이고 배가 가면 물가의 언덕도 옮겨가듯 움직이는 마음을 쉬지 않고는 변화하는 대상을 멈추게 할 수 없는데 윤회의 때 묻은 마음으로 부처의 원각을 보려 하는가?"

    라는 말씀이 나온다.

     

    나 역시 윤회의 때 묻은 마음 때문인지 이 말씀만으로는 왜 무명이 드리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청정무구한 여래의 경지가 미망에 의하여 윤회가 생긴다고 했다.

     

    그 여래의 성격에 어느 점은 에드가 케이시가 꼭 있다고 말하는 절대의 신 대령(大靈)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령 역시 마찬가지로 영혼이 왜 윤회를 하도록 떨어져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영혼의 진화론과 퇴화(退化)론을 들고 나왔지만 여기에도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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